8년째 차세대 성장엔진
"암(癌)보다 더 무서운 ‘제5의 계절’이 도래했습니다. 바로 ‘황사’입니다.”
그러던 2002년 4월, 대한민국에는 ‘역사상 최악의 황사’가 불어 닥쳤다. 전국에 휴교령이 내려졌고 정부는 황사로 인한 피해를 자연재해로 정하고 ‘황사특보제’를 시행하기에 이르렀다. 황사특보제가 시행된 지 1달이 지난 5월 14일. 수원사업장 생활가전 사업부 한용외 사장의 집무실에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반도체사업으로 깨끗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삼성의 제품 중에 왜 공기청정 관련 제품은 없습니까?”
이건희 회장이었다. 이 회장의 음성에서는 숙고(熟考)와 질책이 묻어났다.
“환경문제만큼은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적극적인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삼성이 가진 기술과 노하우를 소비자들의 건강과 직결되는 사업에 투입해 많은 국민들이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제 환경 자체가 신수종 사업입니다.”
전화를 통한 이건희 회장의 업무지시는 1시간이 훌쩍 넘기고서야 끝이 났다. 한용외 사장은 그 날 오후 김중호 수석을 집무실로 불렀다.
“지금까지 하던 일을 오늘 중으로 정리하게. 그리고 내일부터 공기청정 연구를 시작하게. 팀 구성에 필요한 인력은 자네가 직접 선발하고, 명단을 작성해서 나한테 곧장 가져오게.”
한 달 뒤 김중호 수석이 명단에 적어 넣은 12명의 인원이 전원 팀원으로 소집되었고, 사업부장 직속으로 공기청정 TF가 발족했다. 수천 번의 테스트와 수백 번의 밤샘근무. 개발을 시작한 후 1년은 그렇게 지나갔다. 투자 비용만 100억 원에 달했다. 삼성전자의 10년 후 먹을 거리를 책임질 차세대 ‘에어 컨트롤 시스템’은 이렇게 시작이 되고 있었다.
“2010년에 삼성전자는 115조 원의 매출을 달성하겠습니다. 그 배경으로 삼을 8대 성장엔진은 고 용량 메모리, 차세대 디스플레이, 차세대 이동통신, 디지털TV, 차세대 프린터, 시스템LSI, 차세대 매스 스토리지, 그리고 에어 컨트롤 시스템입니다.”
윤 부회장이 ‘신수종 사업’의 마지막 사업으로 거론한 ‘에어컨트롤 시스템’은 세간의 논란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삼성전자의 생활가전사업은 반도체, LCD, 디지털 TV 등 다른 사업에 비해 경영 성과가 높지 않아 비교적 주목을 덜 받고 있던 상황에서‘ 에어 컨트롤 시스템’이 차세대 성장엔진으로 선정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배경에는 삼성전자가 수년 전부터 준비해 독자 개발한 ‘SPi(Samsung Super Plasma ion)’라는 슈퍼 청정기술이 있었던 것이다.
하루 성인이 들이마시는 공기는 대략 9000ℓ. 하루 중 90%를 실내에서 보내는 현대인들에게 실내 공기의 질(IAQ : Indoor Air Quality)은 곧 건강과 직결된다. 인체에 유해한 양이온은 호흡곤란, 두통, 구토 등을 유발한다. 살균을 위한 이온 발생기술은 양이온 발생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가 과제였다.
박래은 수석과 권준현 수석은 3년간의 연구 끝에 양이온(+) 발생을 차단하는 칩을 개발, 플라즈마(Plazma) 방전(放電, discharge)으로 실내 공기 중의 세균이나 곰팡이, 바이러스를 제거하고 인체에 유해한 활성산소(OH radical)까지 중화해 실내환경을 깨끗하고 건강하게 유지시켜주는 신기술 개발에 성공했다. 이것이 2005년 탄생한 슈퍼 청정기술, SPi다. 이는 ‘활성수소라는 원자는 대기 중에 존재할 수 없다’는 묵은 고정관념을 깬 뒤 얻게 된 결실이었다.
하지만 무색(無色), 무취(無臭), 무미(無味)의 ‘공기청정’ 기능을 소비자가 체감토록 하기란 결코 쉽지 않았다. 기술을 개발하는 것과 시장을 개척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기 때문이다. 개발 과정에서 아토피에 시달리던 직원이 완치되는 결과가 나타나는 등 그 성능은 놀라웠지만 소비자를 납득시켜야 하는 어려운 과제가 남은 것이다. 고민을 거듭하던 최도철 전무는 박래은 수석을 긴급 호출했다.
“지난 20년 동안 엄청나게 발전한 IT가 우리 생활을 바꿔 놓았다고 하지만 아직도 바꾸지 못한 것이 세 가지 있네. 물, 공기, 에너지가 바로 그걸세. 그 중에서 가장 노력한 것이 ‘공기’지. 공기청정기가 좋다는 것은 소비자들도 알고 있지만, 문제는 그 효과를 실제로 체감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선택 기준이 모호하단 말이네. 그렇다면 우리 스스로가 가장 엄격하고도 가장 까다로운 잣대로 우리 제품을 검증해보면 어떻겠나?”
제품 개발의 마지막 관문인 ‘효과검증 시험’을 제안한 것이었다. 제품에 대한 자신감 없이는 시작도 할 수 없는 도전이었지만, 확신에 찬 박래은 수석으로서는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 까다롭기로 유명한 유수의 해외 시험기관에 의뢰한 후 결과를 기다리던 시간은 박래은 수석에게 ‘개발에 쏟아 부은 3년보다도 더 길고 긴장됐던’시간이었다.
한 달이 지나고 테스트 결과가 나왔다.
“SPi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A형(독감 바이러스)을 60분 내 99.6%, SARS 바이러스와 동과에 속하는 코로나 바이러스 또한 20분 만에 99.6% 제거함을 검증합니다.” (일본, 키타사토 환경과학센터와 메디컬센터)
“슈퍼청정기술이 적용된 삼성전자 공기청정기와 하우젠 에어컨은 알레르기 유발물질을 제거할 수 있는 능력이 탁월합니다. 기존의 공기청정기능의 성능을 한 차원 뛰어 넘은 제품입니다.” (영국 알레르기협회 BAF<British Allergy Foundation>)
기대 이상의 결과였다. 그 소식을 들은 김중호 수석은 그 길로 제주행 비행기에 올랐다. 악취와 위생 면에서 최악의 장소로 꼽히는 ‘양돈장(養豚場)’을 실험무대로 선정하기 위한 출장이었다. 2007년 3월 제주도 농업진흥청과 손잡은 양돈장 실험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120마리 돼지가 생활하는 돈사 곳곳에 14대의 SPi Unit이 설치되었고, 김중호 수석은 매달 돈사를 방문하며 상황을 체크했다.
시험 시작 12개월 후, 돈사를 방문한 김중호 수석의 손을 부여잡고 연신 고마움을 표시하는 이는 양돈장의 주인이었다.
“SPi를 설치하지 않은 곳엔 돼지가 12마리 죽었는데 설치한 돈사에는 5마리밖에 죽지 않았답니다. 폐사율이 60%로 떨어진 거죠. 삼성전자 덕분에 이분 양돈장의 연간 이익이 1억 원이나 늘어나게 생겼습니다.”
12개월간 양돈사를 관찰하던 농촌진흥청 담당자의 설명이었다. 실제 양돈장에서 발생하는 생물학상(Bioaerosol)물질은 돼지 폐사율의 주요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양돈장 실험을 통해 효능을 검증 받은 SPi는 2009년 4월, 삼성서울병원에 국내 최초 아토피 전용 병실인 ‘알레르겐 프리 룸(Allergen-Free Room)’에 적용되었다. 이상일 아토피 센터장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마디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환자들에게 효과가 있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삼성전자의 기술 덕분에 난치성 아토피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들의 원인 규명과 체계적인 관리를 위한 첫 걸음을 떼었습니다.”
한 달 후에는 홍콩의 환경보호 제품업체인 ‘착 그린’이 ‘SARS(중증 급성 호흡기 증후군)가 주기적으로 발발하는 홍콩에서 꼭 필요한 기술’이라며 계약 의지를 밝혀와 첫 수출 계약을 체결했다.
2001년 SARS, 2004년 AI(조류인플루엔자), 2009년 H1N1(신종인플루엔자) 등 공기를 통해 전염되는 호흡기 질환이 지속적으로 세계인을 위협하고 있으며, 그 고마움을 쉽게 느끼기 어려운 공기에 대한 연구가 세계 각국에서 이뤄지고 있다.
이렇듯 새로운 산업과 시장은 조금씩 우리 곁으로 다가오고 있다. 그리고 새로운 시장이 열렸을 때, 준비된 자만이 그 기회를 잡을 수 있다. SPi를 비롯한 삼성전자의 에어 컨트롤 시스템은 2006년부터 미국정부가 추진하는 항공여객기 내 환경연구(ACER: Airliner Cabin Environment Research) 프로젝트에 외국기업으로는 유일하게 참여하고 있다. 또한, 2008년부터는 르노삼성자동차에 채택되어 운전자와 탑승자들의 차량 내 공기를 책임지고 있다.
미국 포춘(Fortune)이 매년 선정해 발표하는 세계 500대 기업에 뽑히는 일류 기업들의 평균 수명은 보통 30~40년 정도다. 게다가 최근에는 그 수명이 점점 더 짧아지는 추세에 있다. 그러나 그 중 일부는 100년 이상 유지되기도 한다. 이런 기업들은 가히 초일류기업이라 칭할만하다. 이러한 초일류기업들은 끊임없는 혁신을 통해 최고의 경쟁력을 확보하고 이를 바탕으로 안정적인 이익을 창출하기 때문에 장수할 수 있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항상 ‘위기’ 속에 있다. 끊임없이 변화하지 않고 현실에 안주하면 곧 기업 생태계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삼성전자의 LED TV는 2009년 프리미엄 제품으로서 이제 막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또한 에어 컨트롤 시스템은 아직도 꽃을 피우기를 기다리고 있다. LED TV와 에어 컨트롤시스템이 꽃을 피우고 풍성한 과수를 맺을 때쯤 삼성전자는 또 다른 위기 속에서 미래를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다음편에도 계속해서 도전정신이 살아있는 흥미진진한 이야기들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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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 청정기 하나에도 이렇게 많은 얘기가...+_+
양돈장에서 실험을 하다니 참 기발한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제품에 담긴 재미난 사연 앞으로도 많이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
올해 황사가 아주 심하던데
제 5의 계절이라...참 무섭습니다
광래님의 말씀처럼 황사도 이제 하나의 계절이 된 것 같습니다. 이번 년도 황사 조심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