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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천재들, 특히 소프트웨어 인재를 뽑아 오세요.”

컴퓨터 부문 인사팀에 비상이 걸렸다. 1991년 러시아를 방문 중이던 이건희 회장이 직접 국제전화로 지시를 내린 것이다. 1987년 반도체 사업에서 첫 흑자를 낸 후 기뻐할 겨를도 없이 사업구상에 전념했던 이건희 회장은 컴퓨터사업에 관심이 컸다.


‘반도체는 부품이지만 완성품은 컴퓨터’라는 것을 늘 강조했다.
컴퓨터 천재를 뽑으라고 지시한 이유도 일본과 한국이 반도체 생산에 열을 올리고 있지만 정작 그 반도체를 이용해서 부가가치가 높은 제품을 개발하는 것은 미국기업들이라는 점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삼성전자 컴퓨터 사업은 1981년 첫 발을 내딛었지만 10여 년이 지나도록 흑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인사팀 김성재 이사는 곧바로 회의를 소집했다. 안주완 부장, 최창수 부장, 안승준 부장 등이 참석했다.

“컴퓨터 천재라…. 해외 인력들을 발굴해볼까요?”

“제가 유학시절에 본 친구들은 미국에서 상당한 대우를 받고 있어요. 데려오기가 쉽지는 않을 겁니다.”

“우리나라에 대한 인식이 너무 낮아요. 우리 회사는 물론이고.”

“특히 우리 회사가 컴퓨터에서는 국내 4위 정도 밖에 되지 않으니 더 어려울지도 모르겠습니다.
일단 회사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하기로 했으니 아이디어를 내봅시다.”

머리를 맞대고 회의를 거듭했지만 뾰족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 때 인사팀의 안테나에 유니코사(UNICOSA : 전국대학컴퓨터서클연합)라는 한 줄기 빛이 걸렸다.
유니코사는 1974년에 고려대 등 7개 대학 컴퓨터 동아리가 조직한 연합회였다.
대학시절에 유니코사 회장을 지낸 송길섭 사원이 컴퓨터사업 부문에서 일하고 있었던 것이다.


유니코사에는 전산학과에서 컴퓨터프로그램을 전공하는 학생들, 그리고 전공과 상관없이 그저 컴퓨터가 좋아서 가입한 학생들도 많았다.

컴퓨터 프로그램을 자유자재로 만드는 ‘천재’ 후배들을 여럿 봐왔던 터라 송길섭 사원은 후배들을 만나 자연스럽게 컴퓨터와 소프트웨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1987년도 유니코사 회장을 역임하고, 군 제대를 며칠 앞둔 배인식 씨를 비롯해 대학생 5~6명이 송길섭 사원의 연락을 받고 모였다. 삼성전자가 컴퓨터 잘하는 인재들을 뽑고 싶어 한다는 송길섭 사원의 말에 학생들은 아이디어를 쏟아 냈다.

“프로그램 잘 짜고,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다룰 줄 아는 친구들이 각 대학에 2~3명씩은 있어요.”

“전산과에서도 퍼스널 컴퓨팅(Personal Computing)은 안 가르쳐 주잖아요.”

“그렇지. 우리 멤버들 실력은 알아주지.”

“그 동안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이 있어요. 우리가 각 대학에 흩어져 있으니까 모여서 작업하는 데 한계가 있잖아요. 스터디 할 수 있는 공간만 지원해줘도 좋을 것 같아요.”

실제로 유니코사 회원들은 몇몇 기업에 활동 공간을 마련해 달라는 제안을 해 봤지만 뜻대로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회사에 소속되거나 강압적인 분위기라면 회원들이 안 나오려고 할 거예요.”

유니코사 회원들의 자유분방한 성향을 누구보다도 잘 알기에 그들은 일찌감치 선을 긋는 말을 잊지 않았다.

유니코사라는 연합회에 대해 조사한 삼성전자 역시 그 부분이 가장 큰 고민이었다.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자유분방한 대학생들!’

그들을 위해 ‘삼성전자 소프트웨어 멤버십’이라는 새로운 울타리가 만들어졌다.
회사 내에서는 이에 대한 의견이 분분했다. 바로 업무를 진행할 수 있는 인재를 뽑지 않고 실력을 검증하기 힘든 대학생들을 모아놓고 뭘 하겠느냐는 우려의 목소리였다. 당장 실무에 투입할 수 없다는 점은 맞는 말이었지만 멤버십 1기 지원서 136장을 본 뒤에는 그들의 실력에 대해서는 더 이상 논란이 없었다.

당시 소프트웨어 개발, 판매를 전문적으로 하는 기업인 소프트웨어 하우스 (Software House)에 속한 협력회사들의 제품 개발, 1980년대에 컴퓨터에서 한글 프로그램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했던 도깨비카드 개발, 당시 H전자가 채택하던 워드 프로그램 개발, 1990년대 초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소프트웨어라고 불리던 프로그램들이 지원서마다 빼곡했다.

개발 주체는 기업이었지만 실제 개발 작업을 대학생들이 아르바이트로 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물론 사실 여부를 확인해야 했지만 136명의 지원자는 유니코사 회원 중 각 학교의 ‘물건’들을 찾아다니는 일을 하는 모니터 요원들이 자기 학교의 명예를 걸고 발굴해낸 컴퓨터 천재들이었다.

드디어 1991년 5월 5일 첫 면접이 진행되었다.
마치 산 속에 숨어 있던 무림의 고수들이 얼굴을 드러낸 것같았다. 지원자들은 서로의 실력에 감탄하며 앞으로의 활동에 부푼 꿈을 키우는 학생들이 있는가 하면 면접 날짜를 잊어버리고 자다가 불려 나오기도 하고, 면접은 무슨 면접이냐며 운동복에 슬리퍼를 신고 나온 학생도 있었다. 집과 학교에서 ‘또라이’로 불리며 컴퓨터와 씨름하느라 강의시간을 놓치기 일쑤였던 그들이 삼성전자와 인연을 맺는 순간이었다.

삼성 소프트웨어 멤버십은 컴퓨터를 좀 다룬다는 대학생들 사이에 금방 입 소문을 타고 번져 나갔다.
소위 말하는 ‘모범생 인재’를 선호하는 대표적인 기업인 삼성전자가 학점이나 학교를 보지 않고 한 가지 재능만을 보고 회원을 뽑는 것 자체가 뉴스거리였다.

더군다나 멤버십 활동 시작 이후에도 갖가지 성과를 강요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학생들의 관심은 대단했다. 가끔 컴퓨터사업부에서 요청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거나 삼성전자나 삼성종합기술원 소속 박사급 연구원들과 세미나, 미팅을 하기도 했지만 멤버십은 어디까지나 회원들이 하고 싶은 것을 하고, 만들고 싶은 프로그램을 만들어 서로 공유하며 실력을 키울 수 있는 자율 공간이었다. 회원 중에는 다른 대기업에 근무하다 소프트웨어 멤버십을 본 뒤 미련 없이 회사를 그만두고 대학원에 진학, 멤버십에 선발되어 활동하는 경우도 있었다.

멤버십 1기들이 대학 졸업을 앞두었을 때 삼성전자 인사팀은 또 한 번 어수선해졌다.
대학 졸업을 앞둔 회원 중 삼성전자 입사를 희망하는 10여 명을 채용하는 과정에서 학점과 삼성직무검사(SSAT)의 결과가 문제로 떠올랐다. 멤버십 회원들의 학점이 대부분 ‘선동렬 방어율’과 비슷한 수준이었던 것이다. 영어성적은 말할 것도 없었다.

컴퓨터 천재라고 불리던 유니코사 선배들이 대학 졸업 후 서울의 용산이나 청계천 전자상가로 흩어져버린 이유 중 하나는 우리나라에 컴퓨터 인재에 대한 수요가 없었다는 점, 그리고 대부분의 기업이 학점과 같은 일반적인 잣대로 신입사원을 뽑았기 때문이었다.

여러 번의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해 본 결과 소프트웨어 멤버십 회원들의 실력은 이미 검증되었다.
대학에서 컴퓨터를 전공한 대졸 신입사원도 6개월 정도 재교육을 받은 후에야 실무에 투입되는 데 비해 멤버십 회원들은 그보다 2~3년 월등하게 실력이 앞서있었던 것이다. 작업 시간 역시 일반 직원들 보다 열 배는 빨랐다.

 

인사팀에서 설득을 거듭한 끝에 멤버십 회원들이 학업성적과는 관계없이 면접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면접 결과를 발표하기 직전 또 다시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겼다.

결과를 발표하기 전 당시 멤버십 운영을 맡고 있던 송길섭 사원 등 운영진의 의견을 들어보니 컴퓨터 실력과 면접 결과가 정반대라는 것이었다.

“우리 세계에 흔히 말하는 계보가 있습니다. 실력이 뛰어날수록 증조할아버지, 다음은 할아버지, 아버지, 손자, 증손자…, 이번 면접 결과는 증조할아버지가 떨어지고 증손자가 합격하는 격입니다.”

멤버십 회원들의 컴퓨터 실력은 어느 정도 평준화 되어있다고 생각했는데 설명을 듣고 보니 그렇지 않았다. 천재급 인력을 모아놓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중에서도 더 뛰어난 인재를 뽑는 것도 삼성전자가 해야 할 일이었다.

인사팀 안승준 부장은 면접관들을 다시 찾아다니며 상황을 설명하고 결과를 수정했다.
삼성전자에서 면접 결과를 뒤집은 첫 사례였다.



2편도 기대해 주세요.

by 삼성전자 블로그 운영자 블루미





  1. 폰더루 2010/03/16 21:23 l Delete/Modify l Reply

    이런 비하인드 스토리 정말 좋아요.
    재미도 있고..
    어서 2편을 보고 싶군요.
    비화들을 많이 들려주세요~~

  2. 한마디로 2010/03/17 00:02 l Delete/Modify l Reply

    천재를 모아서 둔재로 바꾸는 재주가 있는 기업이네.

  3. 이런 2010/03/17 02:59 l Delete/Modify l Reply

    전 상경계학생이지만, 주위친구들로부터 익히 들어왔던터라,
    정말 혁신적인 인재채용 프로그램이다라는 것에 관심있게 지켜보았었는데,,,
    소프트 멤버십 이외에도 삼성측에서 운영하는 대학생 프로그램 모두 어쩌면,
    인재등용문=[입사사정관제도]라고 할수있겠네요^-^

  4. 하하 2010/03/17 15:45 l Delete/Modify l Reply

    소프트웨어 멤버십이 이런 역사가 있는줄 몰랐군요..
    아직도 소프트웨어 멤버십 학생들은 학점없이 전원 입사시켜주는건가요?

  5. ^^ 2010/03/18 01:03 l Delete/Modify l Reply

    IMF때 멤버쉽에 있었습니다. 옛날 생각이 나네요.
    그 당시 삼성전자에서 멤버쉽에 대해 한 지원은 아직 우리나라의 어느 회사도 그리 하지 못하고 있네요. 화이팅입니다~~

  6. terapi 2010/03/19 18:41 l Delete/Modify l Reply

    현재 멤버십 회원인데... 멤버십에 이런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는지 몰랐습니다. 2편도 정말 기대됩니다.ㅋㅋㅋ

    • by 삼성전자블로그운영팀(블루미) 2010/03/23 10:37 l Delete/Modify

      관심 가져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_^
      연결되는 2편은 아니지만, 인재와 관련된 블루미의 올드 다이어리가 계속 올라가고 있으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7. JIN 2010/03/19 22:28 l Delete/Modify l Reply

    안승준 전무님 수업듣고 있는 학생입니다~ 이 이야기 수업중에 잠깐 잠깐 들었는데 풀 스토리가 이런 거였군요 ㅋ 재미있네요-

  8. 논현12기 2010/03/22 20:01 l Delete/Modify l Reply

    UNICOSA 14기 회원이면서, 소프트웨어멤버십 논현(지금은 강남) 12기 입니다. ^^
    유니코사 선배님들 익숙한 이름을 여기에서 보니 반갑네요~ 아 그립습니다. 멤버십.
    예전에 논현동에 있을때는 진짜 독특한 사람들만 모여있었는데..ㅋㅋㅋ

  9. 논현11기 2010/03/25 10:54 l Delete/Modify l Reply

    소프트웨어멤버십 논현11기 입니다.
    제가 모르는 이야기인 SSM 역사를 보니 재미있네요. 제가 논현동 멤버십에 있을때 밤새워 게임하고 여름에는 새벽에 단체로 인라인타러 한강으로 나가던 생각이 나네요. 그 당시가 그리워 집니다. 그리고 같이 모여 프로젝트를 만들어 나름 개발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납니다.
    지금은 회사에서 저~쪽 자리에 멤버십 2기 선배님도 계시고 가끔 인사도 드립니다.
    재미있는 비하인드 스토리를 많이 알려주세요~

  10. 저 1기... 2010/03/31 14:00 l Delete/Modify l Reply

    1기입니다. 뭐, 모든 상황이 포스팅 된 내용처럼 드라마틱하고 재미있었던 것만은 아니랍니다. ^^ 아무튼 그 시절이 가장 행복했었던 것만은 사실이예요.

  11. 8기 2010/03/31 16:12 l Delete/Modify l Reply

    압구정 8기... 선동열 방어율은 모르겠고. 일단 학고 없으면 불량 회원...ㅋㅋㅋ
    삼성이란 울타리는 의미없고, 다들 열심히 했었죠. 좋은 것만 적힌거 같은데, 안좋은 일도 많았고, 재밌기도 했지만 힘들기도 했었고....
    취업이 목적이 아니었으니 그때는 좋았었네요. 요즘은 취업을 생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예전과는 많이 다르지만...
    전 현재 DMC연구소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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