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가 왜 안 가죠?”
“저도 잘 모르겠어요. 무슨 문제가 생긴 것 같아요.”
“정말 중요한 약속이 있어요. 뉴델리에서 비행기 타야 하는데...”
평소 좀처럼 서두르는 법이 없는 판카즈 아그르왈(Pankaj Agarwal)도 이 날 만큼은 발을 동동 구를 수밖에 없었다. 서류심사와 1차, 2차 면접까지 무사히 마쳤는데 3차 면접시간을 못 맞춰서 입사 기회를 놓친다면 누구를 원망할 것인가. 기차가 안 가면 어떻게 해야 할까. 수만 가지 생각이 떠올라 머릿속이 복잡했다.
그의 학교 인도 IIT 대학(Indian Institute of Technology)이 있는 칸푸에서 삼성전자 면접을 보기로 한 방갈로까지는 2,000km가 떨어져 있었다. 판카즈는 오전 10시 면접 시간에 도착하도록 칸푸에서 뉴델리까지 기차로 이동 후 뉴델리에서 방갈로까지 가는 비행기를 타기로 예약해 놓은 상태였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기차가 출발하지 않았다. 속이 타 들어 갔다.
판카즈가 학교 게시판에서 삼성전자의 GSP(Global Scholarship Program) 모집 공고를 본 것은 2003년 12월이었다. 독일까지 가서 인턴십을 할 정도로 외국에 대해 호기심이 많던 그에게 삼성전자가 제안하는 내용은 매력적이었다.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장학생으로 공부하고, 수료 후에는 삼성전자가 있는 한국에서 근무하는 조건이었다. 조건이 파격적인 만큼 지원 자격이 까다로웠다. 러시아, 인도, 중국의 최상위권 대학에서 학과 성적이 뛰어나야만 지원할 수 있었다. 졸업을 앞둔 그는 인도기업을 포함해 일류 기업에서 입사 권유를 받기도 했지만 어느 글로벌 기업에도 이런 입사 프로그램은 없었다.
전자공학을 전공하는 그에게 삼성전자는 아주 익숙한 글로벌 기업이었다. 그의 집에도 삼성전자 TV가 있고, 그 역시 삼성전자의 핸드폰을 사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삼성전자를 직장으로 선택하기 위해서는 고객으로서 가진 좋은 이미지 그 이상의 무엇이 필요했다. 바로 홈페이지와 교수님, 학교 친구들을 통해서 삼성전자에 대해 알아보고, 서울대학교의 뛰어난 교수진까지 꼼꼼하게 살펴보았다. 평소 디스플레이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LCD 사업에서 세계적으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삼성전자가 더욱 끌렸다.
‘그래, 한국으로 가자!’
오랜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었다. 2차 면접 때는 삼성전자의 김현수 부장이 IIT 대학이 있는 칸푸까지 와서 그를 만나고 갔다. 김 부장은 삼성전자가 해외에서 핵심인재를 확보하기 위해 파견한 채용전문가로, IRO(International Recruit Officer)라고 불렸다.
판카즈는 김 부장과 2차 면접을 치른 뒤 기분 좋게 3차 최종 면접을 준비했는데, 이게 무슨 일인가. 기차는 이제 겨우 출발하려는 듯 움직이고 있었다. 이미 시간이 너무 흘러버려 면접장이 있는 방갈로까지 오전 10시에 도착하는 건 어림도 없었다.
그 시간, 김현수 부장은 면접 준비를 끝내고 최종 면접 참석자들에게 확인 전화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유독 한 사람, 판카즈만 연결이 되지 않았다. 인도는 통신이 불안정해 도심에서 벗어나면 전화가 잘 터지지 않았다. 기차 같은 곳이라면 더욱 그랬다.
‘설마 무슨 일이야 있겠어? 오는 중이겠지.’
애써 태연하게 생각했지만 최종 면접까지 오른 후보자들 중 내심 마음에 두었던 판카즈가 면접에 참석하지 않는 건 아닌가 불안하기도 했다.
김현수 부장이 IRO로 인도에 파견 나온 2000년대 초반에는 인도 최고의 대학인 IIT에 삼성전자는 명함을 못 내밀었다. 전체 학생 중 가장 실력이 뛰어나다는 400명을 놓고 인텔 등 100여 개의 글로벌기업들이 인재유치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말 그대로 전쟁과 다름없었다.
학생들은 졸업하기 1년 전에 이미 취업할 기업이 정해졌다. 취업할 기업이 결정되면 다른 기업의 리크루팅 설명회 자리에는 참석하지 못하는 것이 IIT 대학의 규정이었다.
당시 IIT 대학에서 삼성전자에 입사한 사례가 전혀 없었기에 김현수 부장이 아무리 설명회를 열게 해달라고 요청해도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씁쓸하게 발길을 돌리기 수 차례, 드디어 2003년에 삼성전자가 IIT 대학에서 설명회를 열 수 있게 되었다.
이미 인도 최대의 자동차기업인 타타자동차에 입사하기로 되어 있던 판카즈는 규정상 삼성전자 설명회에는 참석하지 못했고, 학교 게시판에서 GSP 공고를 본 뒤 지원한 경우였다. 성적이나 대학시절 활동 내용을 볼 때 누가 봐도 탐나는 천재급 인재였기에 김현수 부장도 적극적으로 삼성전자 입사를 권유했다. 그런 판카즈가 최종 면접을 보는 날 연락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바로 그 때 판카즈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수화기 너머로 울먹이는 목소리가 들렸다.
“판카즈입니다. 어떡하죠? 기차에 이상이 생겨서 늦어지는 바람에 예약했던 비행기를 못 타게 됐어요. 도저히 면접 시간을 못 맞추겠습니다.”
“그렇잖아도 연락이 안 돼서 걱정하던 참이었어요. 자, 침착하게 생각해봅시다. 판카즈, 삼성전자에 정말 입사하고 싶어요?”
“네!”
“멀리서 힘들게 오는 건 압니다. 그렇다고 해서 혼자 봐주기는 어려워요. 일단 여기는 내가 설득해볼 테니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최대한 빨리 와요! 그럼 몇 시쯤 도착할 것 같아요?”
“방갈로까지 바로 가는 비행기는 시간이 맞지 않아요. 아무래도 뉴델리에서 뭄바이를 거쳐서 방갈로까지 가야겠습니다. 오후 5시쯤에는 공항에 도착할 것 같습니다.”
“좋아요. 여기서 면접 시간을 변경해 보겠습니다.”
‘최종 면접에는 삼성전자 임원과 서울대학교 교수님들이 여러 명 참석한다고 했는데 그 분들이 기다려 주지 않으면 어쩌나.’ 판카즈는 머릿속이 하얘졌다.
잠시 후 김현수 부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판카즈! 면접 장소를 호텔로 변경했습니다. 5시에 공항으로 삼성전자직원이 마중 나갈 겁니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사실 GSP 면접 일정은 매우 촉박했다. 모스크바와 방갈로에서 면접을 본 후 새벽 비행기로 중국으로 이동, 상해와 북경에서 또 면접을 보기로 계획되어 있었다. 면접관들도 강행군에 서서히 지쳐갔다. 하지만 삼성전자에 입사하고 싶어 2,000km를 달려오고 있는 지원자는 2003년 졸업시험에서 전자공학 전공자들 중 1등을 차지한 인도의 천재, 판카즈였다. 김현수 부장은 정중하게 면접관들을 설득했다.
호텔 회의실이 면접장으로 탈바꿈했다. 서울대학교 이상욱, 전국진, 차상균 교수와 안승준 전무 등 삼성전자 임원들이 자리를 잡았다.
면접장에 늦은 것을 만회하기라도 하듯 판카즈는 자기소개와 GSP에 지원한 이유를 당차게 말했다. 우여곡절 끝에 이루어진 면접은 1시간 넘게 진행되었다. 전문 엔지니어를 뽑는 과정인 만큼 화이트보드에 전자공학 관련 과제를 제시했는데, 판카즈는 거침없이 개념을 정확하게 설명했다. 교수들은 서로 마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판카즈, 지금은 한국어 전혀 못하죠? 배울 자신 있습니까?”
“독일과 스위스에서 인턴십을 하면서 제가 호기심이 많고, 낯선 외국 생활을 즐긴다는 걸 느꼈습니다. 새로운 문화와 언어를 배우는 것이 재미있어요. 제가 언어 배우는 것에 소질이 있는 것 같아요.”
“멀리서 힘들게 면접 보러 왔는데, 떨어지면 어떻게 할 겁니까? 타타자동차로 갈겁니까?”
“아닙니다. 다시 입사 준비를 해서 삼성전자에 지원할 겁니다.”
“GSP에 선발되면 한국에서 살아야 하는데, 부모님이 서운해 하지 않으세요?”
“부모님은 항상 제 의견을 존중해 주십니다. 지금까지 잘해 왔으니까요. 그런데 한국이 어디에 있는 나라인 줄도 모르세요. 제가 한국에 가면 부모님도 초대해서 구경시켜드릴 생각입니다.”
면접장에 잔잔한 웃음이 퍼졌다.
2007년 8월 삼성전자 수원사업장 <제1회 외국인 임직원 한국어 말하기 대회>가 열렸다. 국내 거주 2년 이상 부문에서 1등은 판카즈였다.
“저는 제가 ‘중요한 사람’이라고 스스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삼성전자에 입사한 이후 회사와 동료들은 언제나 저를 ‘중요한 사람’으로 대해 주었습니다. 그것은 자부심과 동시에 무거운 책임감을 갖게 만드는, 제 일상의 ‘행복한 긴장상태’이기도 합니다.”
포기하지 않는 열정과 확고한 의지를 가진 열성적인 인도 천재는 삼성전자의 판카즈 아그르왈 선임연구원의 이야기랍니다.
by 삼성전자 블로그 운영자 블루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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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훈한 얘기군요.
그런데 한국인 프로그래머들도 대우를 잘해주면 너무 좋을텐데 말이죠..
허허님 좋은 의견 정말 감사합니다. 말씀처럼 한국인 프로그래머들, IT 종사자들이 향후 소프트웨어 전쟁의 가장 큰 축이 될 것이니 대우도 그만큼 변화가 생기지 않을까요?
그림에 오타.. ITT
poken님이 가장 먼저 말씀해 주신 덕분에 수정하였답니다 :)
감사합니다!
정말 간절히 원하는 것은 이루어 진다는게 사실인 것 같네요.
'허허' 님 말처럼, 국내 IT쪽 일하시는 개발자 분들도
좋은 대우 받으면서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넵~!! 대한민국 IT 종사자 여러분 화이팅입니다!!
정말 삼성전자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지 않은 도전적인 기업 같아요!
그런데 서울대학교는 면접에 늦으면 무조건 불합격이라고 하네요?
심지어 기차가 사고났는데 그에 앞서 사고때문에 기차를 놓쳤다는 희안한 경우에도 말이죠.
서울대학교는 삼성전자의 창의적이고 유연한 대응을 배웠으면 해요.
Desac님 말씀처럼 더욱 창의적이고 유연한 삼성전자가 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삼성은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지 않은 기업이죠.
비자금을 마련하고 전담조직을 두어 3부 요인과 검찰, 국세청 등에 정기적으로 뇌물을 먹었으니까요.
김용철 변호사의 책 <삼성을 생각한다>를 보고 알았는데, 출판사에서 광고를 내려 해도 삼성에서 신문사에 압력을 넣어서 광고조차 못하게 한다지요?
눙치님, 게시된 컨텐츠 내용과 무관한 내용의 댓글을 남겨주셨네요.
말씀해주신 건에 대해서 확인해 본 결과 '삼성그룹 트위터계정(@samsungin)'에서 다음과 같이 이미 공식적인 입장을 표명한 것으로 알고 있으므로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삼성은 <삼성을 생각한다>에 대해 판매금지 가처분신청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 책과 관련하여 삼성은 언론사에 대해 어떠한 입장표명도 한 적이 없습니다."
9:53 AM Feb 4th (http://twitter.com/samsungin)
오해가 조금이나마 풀리셨으면 좋겠습니다.
1명의 고급인력이네요. IT강국에서 삼성까지 쫓아왔다니. 그분도 대단하고 삼성도 대단합니다. 모두 파이팅하세요~
말씀주신 것처럼 인도 역시 IT 강국으로 유명한데,
한국까지 온 저 열정!
쉽게 내리기 힘들 결정이었을텐데, 저 열정에 놀랄따름이랍니다 :)
본문에는 IIT, 그림에는 ITT..둘이 다른건가요 오타인가요~
위에 poken님도 말씀해 주셨었는데, 본문과 이미지가 틀렸었네요. 지금 바로 수정하였습니다 ^^
감사합니다.
IIT 가 맞답니다 :)
천재면 단가 흥~
천재보단, 원하고자 하는 일에 대한 저 열정과 노력이 더 대단한 것 같습니다. ^^
좋은 하루 보내세요~!
우여곡절이 많았던 면접이었네요.^^
아.....근데 왠지 전화면접은 낯설지가 않아요~ㅎㅎㅎ
잘보고 갑니당~ㅎ
말씀 그대로 우여곡절이 많은 면접이였던 것 같습니다 ^^
윤상무상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손발이 오그라드는 기사군요.
국내 IT 종사자들이 들으면 참~흐뭇해하겠습니다.
채용한 천재들(!)이나 챙기세요.
(쟤들은 야근비 다 챙겨주시죠? 글로벌천재니까 ㅋ)
물론 각 개인별, 회사별로 차이야 있겠지만 꼭 삼성전자가 아니라도 어디가나 IT 관련 종사자들의 어려움은 말하지 않아도 잘 아시지 않을까 싶습니다 ^^
좋은 하루 보내세요
어렵게 뽑은 인재들을 잘 유지하는 노력도 필요합니다.MIT,IIT 등 유수의 대학을 나왔다는 인재들을 적합하게 활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안 그러면 돈만 낭비합니다.또한, 학교가 우수하고 성적이 우수하다고 해서 꼭 삼성을 키워주는 인력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실제 우리 제품을 잘 만드는 인력들은 중간정도 대학나와서 회사가 곧 내인생인듯 몇날 몇일 밤샘 하면서도 묵묵히 일하는 평범하고 성실한 직원들이라는 것을 알아 주십시요.인력에 있어서도 브랜드를 너무 신봉하지 말아달란 말씀입니다.현업에서 보아온 봐로는 번쩍 거리는 학벌과 경력을 가진 인력들이 그만한 값어치를 하지 못하는 것을 많이 봤습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잘 새겨 들어 발전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세상에...
이런 사연도 있었군요.
인도천재 정말 멋진 학생인 것 같습니다.
앞으로 좋은 일이 많이 일어날 것 같네요.
하고자하는 열정으로 기회를 얻으신 판카즈님을 응원합니다! 빡빡한 일정 속에서 국내뿐만아니라 글로벌 인재 채용에 노력하는 삼성전자도 화이팅 입니다.
예전에 삼성의 모 계열사에서 연구소 인력채용을 담당했느데, 그러고 보니 약 20년이 되었군.
갑자가 독일에 전화를 두시간 반이나 했다고 경위를 파악하라는 지시가 내려온적이 있었다.
독일에 있는 박사를 채용하기 위해 전화로 근무조건을 상담하고,
전문기술을 파악하기 위해 연구소의 해당부문 여러 박사들이 돌아가면서 전화했던 결과
독일에 국제전화를 두시간 반이나 하게 되었다.
오래된 기억이군.